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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번호200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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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영어 병기 애국가 악보 1943년 미 '한국인 연구회보'에 실려… 새로 발굴 (조선일보 2005년 6월 23일 보도)

미국에서 한글과 영어를 병기해 간행한 애국가 악보(1943년 9월)가 새로 발굴됐다. 현전하는 애국가 악보 중 1936년 6월 미국에서 발간된 애국가 악보 다음으로 오래됐다. 애국가 악보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금지단행본’으로 지정한 까닭에 광복 전 악보는 모두 해외에서만 나왔다. 현재까지 전하는 애국가 악보는 모두 4개다. 근현대사료수집가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가 22일 공개한 이 악보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운영되던 한국인연구위원회(Korean Research Council)가 계간으로 간행한 ‘한국인연구회보(Korean Research Bulletin)’ 1943년 9월호 첫 페이지에 실려 있다. 애국가 가사를 4절까지 한글로 기록한 뒤, 애국가 1절 가사를 ‘Dong hai mool gwa Paik doo san i…’로 발음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적었다. 애국가는 안익태가 1935년 11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작곡했다. 안익태는 미국에서 발행되던 한국어 주간신문 ‘신한민보’ 1936년 3월 26일자 기고에서 “1930년 미국 상항(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그곳 예배당에서 제 일생에 처음 부른 대한국(大韓國) 애국가였다”며 “그러나 이 곡조는 스캇치의 술노래(올드 랭 사인)였다가 나중에 이별가로 불린 것인데, 이를 신성한 애국가 곡조로 부르는 것은 대한국의 수치인 줄 자각해 애국가 작곡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애국가는 지난 5년 동안의 노력 끝에 1935년 11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완성했으며,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도착했을 때 한인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만년필로 작곡했다”고 밝혔다. ‘신한민보’는 애국가 작곡 경위를 밝힌 안 선생의 기고문을 실은 직후인 1936년 6월 18일자에 “이 악보를 받으신 분은 20전(이상)을 출판비조로 아끼지 않고 보내실 줄을 믿는다”는 광고와 함께 애국가 악보를 별지(別紙)로 신문에 동봉해 독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악보가 현재 남은 애국가 악보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저자Korean Reaserch Council,L.A
  출판사Korean Reaserch Council,L.A
  상품상태  [양호]
  발행년도1943
  사용언어영어
  출판구분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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