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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번호200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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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권 빼앗기 전에도 살상만행 1919년 3·1운동 관련자 처형사진, 1907년 양민학살로 밝혀져 프랑스 주간지 륄리스트라시옹 … 1907년 8월 10일자에 실려 (조선일보 2005년 8월16일 보도)

여기, 백의(白衣)를 입은 세 명의 조선인이 어느 벌판에서 소형 십자가에 묶인 채 총살을 당했다. 그 옆으로 각반을 한 일본 군인 세 명이 ‘당당하게’ 포즈를 취했다. 당시에도 일종의 ‘폴리스 라인’이 있었던 듯, 멀리서 조선인들이 공개 처형을 지켜 보았다. "무고한 조선인들 상대로 총기 살상능력 실험 대한제국 엄연히 존재했지만 절대권력은 일본" 독립기념관 등 학계에서는 이 사진을 1919년 3·1 운동 관련자 처형 장면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조선인을 처형할 수 있었다면, 당연히 일제가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1910년 이후의 장면일 수밖에 없다는 추정이었다. 한데, 이 장면은 대한제국이 엄연히 존재했던 1907년도에 벌어진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총살당한 사람들은 무고한 조선인들로, 총의 살상 거리를 시험하기 위한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근·현대사료 수집가 윤형원 아트뱅크 대표가 최근 프랑스 주간지 륄리스트라시옹(현 파리마치의 전신) 1907년 8월 10일자에서 이 사진과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사진 제목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벌어진, 일본인에 의한 한국인 처형’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장면은 전라남도 담양에서 벌어졌다. 촬영 시기는 명확히 기록되지 않았지만, 1907년 7월 즈음으로 추정된다. 고종의 강제 퇴위와 조선 군대 해산 등이 연이어 벌어지던 즈음에 민중 봉기가 한반도 여러 곳에서 발생했다.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는 특히 심했다. 이 지역민들은 일본의 속박과 억압을 다른 지역에 비해 심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어장(漁場)이나 주거지 등이 약탈당하기도 했다. 이를 제어할 만한 힘이 없던 조선 정부를 대신해, 일본은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탄압을 가했다. 재판하는 시늉만 한 채 사형을 대량으로 집행하기도 했다. 역겹고도 잔인한 장면이 연출됐다. 사진 속 세 명의 조선인은 호기심 때문에 철도가 건설되는 곳에 가까이 다가갔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가갔던 곳의 철로는 밤 동안 탈취된 상태였다. 재판 없이 세 사람은 체포된 채,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일본군은 총기 살상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이 무고한 세 조선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50m 떨어진 곳에서 조준 사격했을 때 사람이 총에 맞고 죽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동원한 것이다. 일본인 장교는 노트에 사격 결과를 기록했다. 기사는, 역사상 유례 없는 만행을 이 조용한 나라에서 행하고 있는 일본은 이제 절대권력이 돼 버렸다며 끝을 맺었다.

  저자L'illustration,Paris
  출판사L'illustration,Paris
  상품상태  [양호]
  발행년도1907
  사용언어불어
  출판구분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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